[강력사건] 일본 스가모 아동 방치사건

일본 스가모 아동 방치사건

도쿄의 토시마구. 니시 스가모.

1988년 7월 17일. 경찰에게 한통의 전화가 옵니다.

나는 집주인인데, 우리집의 세입자 가족이 있는데 어머니가 없고 아이들끼리만 생활하고 있는 것 같다.

라는 걱정스런 신고전화였습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맨션에 도착했고, 현관문을 연 순간 경찰은 충격에 휩싸입니다.

집에 있던 것은 14세의 큰아들. 7세의 큰딸. 3세의 작은딸.



또 한가지 충격적인 것은 이 집의 상태입니다. 방은 사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쓰레기로 가득차 있었고, 방안은 썩은 악취로 숨을 쉬기 어려운 상태였다고 합니다.


아이들의 상태 역시, 14세의 큰아들과 7세의 큰딸 3세의 작은딸은 장기간에 걸친 영양실조로 인해 거의 뼈만 남은 상태였습니다.

집 안의 화장실 근처에선 말라붙은 대변이 보였고, 한눈에 봐도 아이들이 상당히 오랜기간동안 방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사건 15년전. 한 여자와 한 남자가 있습니다. 둘은 사랑에 빠졌고, 여자는 집을 뛰쳐 나와 남자와 동거를 시작합니다. 물론 동거를 시작한 뒤, 두 사람은 정식으로 결혼하기 위해 혼인신고서를 씁니다. 남자는 이 혼인신고서. 내가 관청에 제출하고 올게. 라고 말하며 혼인신고서를 가지고 나갔지만, 나중에 안 사실은 남자는 이것을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남자와 여자사이에는 귀여운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남자는 곧바로 내가 우리 아들 출생신고를 하고 올게. 하고 나갔지만 나중에 안 사실 역시 남자는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남자와 행복한 결혼생활 중이던 여자는 어느 날부터 남자가 집에 들어오지 않자 이를 알아본 끝에 남자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고, 회사 돈을 횡령하여 잠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시기쯤 여자의 큰아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임에도 취학통지서가 날라오지 않아 의문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기다리다못해 찾아간 관공서에서 여자는 아들의 출생신고가 되어있지 않다는 사실과 혼인신고가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충격을 받게 됩니다. 그 후로 사귄 남자들 사이에서 여자는 또 한번의 임신을 하게 됩니다. 1981년. 딸을 출산합니다. 이 때 그녀는 병원이 아닌 집에서 아이를 출산합니다. 그 후에 출산도 모두 집에서 했다고 합니다. 1984년 이번엔 아들을 낳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곧 사망합니다. 여자는 큰아들에 이어 출산한 모든 아이들을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사망신고 또한 할 수 없었죠. 시신 처리에 곤란을 느낀 여자는 사망한 자신의 아들을 비닐봉지에 탈취제와 함께 포장하여 집벽장 속에 숨깁니다. 1985년엔 또한번 딸을 출산합니다. 다음 해인 1986년에도 이어서 딸을 출산합니다. 그 당시 여자는 백화점의 판매원으로 생활비를 벌고 있었으며, 어머니가 밖에서 일하는 동안 큰아들은 훨씬 어린 자신의 동생들을 돌봐야만 했습니다. 그래도 엄마는 밤이 되면 매일 집에 들어왔었습니다. 그런데 이마저, 어느날부터 어머니가 집에 들어오는 횟수가 적어지게 됩니다. 네, 어머니는 사귀던 남자 중의 한 사람과 동거를 시작했던 것인데요. 결국엔 집에 들어오지 않아 이 집에는 아이들만 남게 된 것입니다. 어머니는 가끔 큰아들을 통해 생활비를 건내주고 이따금 전화로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하네요. 어머니는 큰아들에게 오사카에 장기출장을 갔다고 거짓말했지만 큰아들은 엄마에게 남자가 생긴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떠날 때 큰아들은 어머니에게 울면서 가지 말라고 매달렸지만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엄마는 행복해지면 안되는거니?” 점차 어머니가 건내주는 생활비도 절반으로, 이따금씩 오던 전화마저 끊기게 됩니다. 점점 적어지는 생활비와 방치로 인하여 아이들의 상태는 심각해져만 갔고, 결국 이를 수상히 여긴 주민의 신고로 사건이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이 엽기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은 언론을 통해 연일 보도됩니다. 아이의 어머니는 뉴스를 보고 왠지 자신들의 아이들인 것 같다고 판단해 경찰에 자진출두를 합니다. 사실 경찰서에 가면서도 아이들의 어머니는 자신의 이야기인지 긴가민가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맨션에 놓고 온 아이들은 총 4명인데, 어찌된 일인지 뉴스에는 3명의 아이가 방치되어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경찰에 가서 본인의 아이들이 맞다는 것을 확인한 어머니는 한명은 어디있는지 물었고 한명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언론에서 보도하기 시작합니다.


사라진 것은 2살박이 막내였습니다. 

큰아들은 엄마가 집을 나가기 전, 지금은 사정이 있어 학교에 갈 수 있지만 언젠가는 갈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는 어머니 말을 믿고 집에서 동생들을 돌보며 어머니의 귀가를 기다렸습니다. 어머니 대신 동생들에게 식사를 주고 막내의 기저귀를 갈았습니다. 외출은 주로 본인들이 사는 맨션 1층에 있는 편의점에 갈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집을 떠난지 몇 달이 지난 어느날, 큰아들은 맨션의 인근에서 중학교 1학년의 소년 두 명을 만나게 됩니다. 이들은 가정 환경이 복잡하고 학교에 잘 나가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 때 당시 큰아들은 매우 지친 상태였습니다. 돌아오겠다는 어머니는 소식이 없고, 생활비는 떨어져 막내의 기저귀는 하루에 한번 조차 갈기 힘든 상황이었으며 동생들은 영양실조로 거의 움직임이 없었고, 가스나 전기가 끊겨 목욕을 하지 못한채 몸에선 냄새가 나기 시작했기에 이 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외부의 두 소년을 만나면서 조금은 해소했던것 같습니다. 소년들은 어른이 없는 큰아들의 맨션에서 자주 놀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소년 중 한명이 본인이 사다놓은 컵라면이 없어진 것을 알고 분노했는데, 알고보니 둘째 여동생이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그것을 먹은 것이었어요. 격분한 소년이 소리치는 것에 놀란 2살박이 막내가 울음을 터트리며 오줌을 쌉니다. 그에 소년들은 막내를 이불에 싸서 높은 곳에서 떨어트리며 분풀이를 하게 되는데요. 나머지 소년도 폭행에 가담. 또, 이를 보고 있던 큰아들도 결국엔 구타에 가담하게 됩니다. 결국 2살박이 막내는 두부외상으로 사망하고 맙니다. 나머지 두 소년은 집에 가야겠다며 맨션을 떠납니다. 큰아들은 자신의 엄마가 본인의 아이 중 한명의 시신을 벽장에 숨겼던 것처럼, 비닐봉지에 탈취제와 함께 막내의 시신을 벽장에 넣으려고 했으나 문제는 집에는 탈취제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대로 방치하면 냄새가 심해질 것을 우려한 큰아들은 막내의 시신을 가방에 담아 인근의 산에 유기하게 되었고,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막내동생을 죽이게 된 큰아들은 남은 두 여동생과 함께 셋이서 맨션에서 꺼져가는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도쿄 지방법원은 어머니에게

“당신은 아이를 양육하는 번거로움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범행으로, 막내의 죽음의 원인은 당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고 밝히며 1988년 10월 26일. 어머니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의 유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또, 자신의 막내동생을 사망케한 큰아들에게는 상해 치사 및 사체 유기죄가 있었으나 상황적인 특수성을 고려하여 소년원 대신 요양원에 보내지게 됩니다. 당시 7세와 3세의 딸들은 어머니가 동거중이던 남자와 함께 데려가져 살게 되었고요, 큰아들은 고아원으로 옮겨진 뒤 소식을 누구도 알 수 없다고 합니다. 2019년 현재 큰아들은 45세가 되었겠네요. 이 충격적이고 안타까운 이야기는 영화로도 제작이 되었는데 2004년에 아무도 모른다라는 제목으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